정부가 디지털 헬스케어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오헬스산업을 새로운 국가 핵심 전략으로 꼽으면서 7대 핵심분야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포함했는데 이는 시장의 성장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원희목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고문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의료분야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개인별 맞춤 질병예방·건강관리·돌봄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개인 유전정보분석, 원격의료, 디지털 치료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고 개인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 소프트웨어 '솜즈'를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로 품목허가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지난 13일 팬데믹 3년여 동안 비대면진료 이용자 수는 1379만명, 진료 건수는 3661만건에 이른다는 점을 발표한 데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의 성장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비대면진료를 처음 실시한 2020년 이용자 수는 84만명, 진료 건수는 142만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 319만건·126만명, 2022년 3200만건·1272만명으로 해가 지날수록 급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IA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0년 1520억달러(199조원)에서 2027년 5090억달러(664조원)로 연평균 18.8%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푼다"… 개인정보 활용 방안은
개인이 직접 자신의 정보를 관리·활용하는 마이데이터사업은 2022년 1월부터 금융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돼 최근 통신, 이커머스 등의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건강보험에 기반을 둔 의료분야에 마이데이터사업이 접목하면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법 제21조 등에 따르면 개인 의료데이터는 질병이력, 진료·처방기록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고 있어 의료인 등이 다른 사업자에게 자유롭게 전송하는 게 제한돼 있다. 환자 개인이 의료데이터를 제공받아 제3자에게 직접 전송해야 하는데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복지부는 지난 2일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등을 육성할 전략을 소개했다. 복지부는 의료분야에서도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도입하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계획을 발표해 의료분야의 마이데이터 사업 본격화를 추진한다.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이란 특정 기업이나 기관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인 개인이 동의하면 제3자인 다른 사업자에게 옮길 수 있는 권리다.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제약사-보험사 등 이종 사업자 간 신사업모델 발굴을 위한 협력도 활발해질 수 있다. AI사업자가 의료진으로부터 의료 영상 빅데이터를 제공받아 AI모델을 지속 학습시켜 의료진을 보조해 질병을 진단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고도화할 수도 있다.
다만 개인 의료데이터가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높아진다는 의미여서 보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현재 가이드라인으로 규정된 가명정보(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가명처리된 정보) 처리 및 적정성을 심사하는 기구인 데이터심의위원회 운영 근거를 법률로 격상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 의료데이터의 관리를 철저히 하되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3년 동안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사람의 수가 누적 1379만명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인포그래픽은 연도별 비대면진료 현황. /그래픽=강지호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 확대에 의료계 반발 넘을까
정부의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육성 계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의료계 등에서 나온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디지털 치료제나 비대면진료 등에 대한 수가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서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실시한 비대면진료를 통해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오남용 사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비대면진료가 확산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비대면진료를 받는 비중이 커져 일반 의원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팬데믹 3년여 동안 한시적으로 실시한 비대면진료 현황을 살펴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비율이 93.6%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이에 따른 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확대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면 산업을 키우는 것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한시적으로 도입한 비대면진료를 상시 제도화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도서·벽지· 재외국민·감염병 환자 등 의료취약지·사각지대 환자를 위해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초진환자보다는 재진환자, 상급병원보다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함으로써 의료계와 갈등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비대면진료가 확대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기반이 붕괴될 것으로 우려했지만 지난 3년간 현황을 살펴보면 오히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가 활발히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포그래픽은 의료기관 종별 한시적 비대면진료 참여 현황. /그래픽=강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