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신의료기술평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산학연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일 보건복지부에서 주최하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제13회 헬스케어 미래포럼서 '바이오헬스 규제개선 중장기 정책방향'에 대한 패널들의 열띤 토론이 열렸다.
송시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고 △김병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조민우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옥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한국생명윤리학회장) △김문구 한국스마트헬스케어협회 미래사업본부장 △김형욱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장 △황태순 테라젠바이오 대표 △곽노성 연세대학교 글로벌인재대학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송시영 교수의 질문을 아홉 명의 패널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에 앞서 패널들은 규제개선 정책의 필요성과 대표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규제 사례를 소개했다. 히트뉴스는 산학연 관계자 중 김옥주 교수, 최윤희 선임연구위원, 황태순 대표의 발표 내용을 정리했다.
김옥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2001년 미국에 와서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트랙을 밟은 후 IRB 전문가로 활동했다. IRB 제도는 사실 미국서 1974년 이후에 생긴 것이다. 연구자가 하나의 프로토콜을 가지고 연구하는 게 대세였다"며 "21세기 직전에 임상시험이 글로벌화 됐다. 다국가 다임상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IRB 제도가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후 미국, 유럽, 호주서 IRB 제도 개선에 나섰다. 선진국에서 시간이 많이 들고, 피험자를 보호하지도 않기 때문에 IRB 제도가 이미 다 바뀌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IRB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법제화로 됐을 때 가장 확실하게 (제도가) 작동한다. 주요 선진국에서 해결된 것이 국내서만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중앙 IRB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IRB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참 쉽지 않다. IT, 반도체 산업과 달리 이 산업에는 바이오 혁신가가 있으면, 보험 공단이라는 국가 지불자가 있다"며 "'바이오 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키우자'라는 의견이 있다. 이같은 성장동력을 키우는 것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적절한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총체적인 규제 비용, 규제로 인해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과 규제를 개선해 얻는 혜택(Benefit)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 어디까지 리스크를 감안할 것인 지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를 다루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테라젠바이오를 이끄는 황태순 대표는 "현재 국내에 약 30여개의 유전체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저희가 정부부처와 여러가지 일들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정부부처 조직이 현장 중심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현장 중심의 의미는 개인정보법, 유전체라는 하나의 부분을 솔루션으로 개발하거나 산업화 하기 위해 이런 부분에서 현장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국내 바이오 벤처와 대기업들의 연합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황 대표에 따르면, 국내 10대 대기업 모두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과 바이오 스타트업의 협력은 전략적으로 움직일 때 속도가 빠르고, 폭이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조건 현장 중심에 관한 것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한 부분과 혁신의 부분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신의료기술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병수=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기기를 평가하는 데 있어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 수가를 투입할 가치 유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가치 등을 평가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다. 진입이 많기 때문에 일단 규제를 개선해 평가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조민우=의료기기나 행위 같은 경우에는 시장이 작거나 그 편익을 개발자가 가져가지 않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시장이 (해외에 비해) 더 작다. 규제라는 것이 규제만 있어서는 곤란하고, 규제를 풀어서 자율성이 있는 부분 만큼은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곽노성=신의료기술평가 자체는 필요하지만, 이를 사전규제해 평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윤희=궁극적으로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유예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예제도를 통해 혁신의료기기들이 시장에 나왔을 때 근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근거를 만들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 기관이 단순히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혁신을 위한 근거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NECA) 같은 규제기관들이 그런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형욱=의료기기를 살펴보는 식약처의 입장에는 큰 불만이 없지만, 돈을 지불하는 NECA에 많은 불만이 있다. 인력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공무원들의 인력을 줄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회사 같은 경우에는 사람을 줄이더라도 신산업 부문에는 인력 채용을 늘리고 있다.
김병수=식약처는 기기만 본다. NECA 같은 경우에는 교수들이 검토하고 있다. 근거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 시스템이 없다. 예산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 예산으로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조민우=사실 NECA는 신의료기술평가 위탁기관이다. 규제기관이 아니라 위탁운영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근거(Evidence)를 해석하고, 급여 기관에 전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프라벨로 치료받으려면 굉장히 어려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구조다.
국내 IRB에 대해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 IRB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김병수=중앙 IRB를 통해 IRB를 심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기관들이 참여해 IRB 심의 수준이 올라간다면 하나의 IRB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승인=중복된 규제나 심사가 개선이 된다면 국내 제약산업에 충분한 경쟁력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임상시험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글로벌 빅파마의 임상시험도 국내서 진행해 환자들에게 이같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김옥주=미국 같은 경우에는 개별 IRB에 대한 논의를 오랜 기간 진행해 왔다. 미국은 싱글 IRB를 의무화 했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경우에는 현재 IRB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복지부에서 IRB 인증 평가를 담당했는데, 많은 기관에서 평가하는 분들이 피드백을 제공했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의 장애요인과 개선방안을 말해 달라.
김형욱=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예방 관리에 있어 웨어러블(Wearable)의 활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의료분야에 대한 지식과 적용에 있어 한계가 있다. 또한 제조사와 의료계가 협업하는 부분도 쉽지 않다.
DTx(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에 있어 디지털 바이오마커는 굉장히 필요하다. 특히 인지행동 치료 분야에서는 확실히 효과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 갤럭시S 같은 국내 대표 웨어러블과 DTx 기업들을 위한 협업의 장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허들이 되는 규제가 있다면 정부에서 과감히 제거하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 지원을 통해 의료계와 산업계가 협업한다면 바이오헬스 분야의 혁신 생태계가 조성이 될 것 같다.
황태순=DTC(소비자 직접 의뢰)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DTC 유전자 검사 분야에 있어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또한 데이터 생산보다 데이터 활용하는 부분에 대한 투자의 폭을 좀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DTC 분야는 질병의 영역이 아니라 웰니스(Wellness) 영역이다.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연구개발(R&D) 분야를 지원했으면 좋겠다.
최윤희=디지털 의료 산업에 있어 디지털 데이터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왜 안 되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여전히 활용 가이드라인에 대한 법적 모호성이 없다. 연구에는 쓸 수 있지만, 산업적 활용까지 촉진하고자 한다면 안전한 정보를 산업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을 관련 문서에 추가해야 한다. 의료 데이터, 2차 데이터에 대한 활용 등에 대한 도입도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대학병원 리더들이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황태순=미국 기업에서 약 20년 간 일하면서 앙트레프레너십에 대해 굉장히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로 앙트레프레너십을 통해 기업과 병원이 서로 협력해 R&D를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윤희=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몇몇 대학이 노력하고 있지만, 의과대학 내에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기 위해 커리큘럼의 개선이 필요하다. 공학이나 이공계 기술에 대한 접근성에 대한 부분을 커리큘럼에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