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기기, 활성화 조건?‥ '한국형 건강보험'과 '인식 제고'

|산업 활성화하려면 보험 시장 진입 필수‥디지털치료기기, 전통적 급여와는 맞지 않아

|디지털 헬스 서비스에 많은 지출을 기대하지 않아‥인식과 수용력 위해 교육과 홍보 필요

이제 막 우리나라에서 발을 떼기 시작한 '디지털치료기기(digital therapeutics, DTx)'가 활성화되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디지털치료기기 특성에 맞는 한국형 건강보험 모델을 설계하는 것'과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한 인식 제고'다.

이 두 가지는 디지털치료기기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확산 가능성 면에서 필수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HIRA Research의 '국내 디지털치료기기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언: 해외 주요국 제도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치료기기란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medical device, SaMD)로 정의된다.

2020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면서 '디지털 치료제'의 의미가 알약 등의 '의약품' 형태로 인식되는 오류를 막기 위해 '디지털치료기기'로 명명을 공식화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특징을 지니며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3년 2월 15일과 4월 19일, 국내 1·2호 디지털치료기기가 각각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받았다.

해당 디지털치료기기는 모두 불면증 치료를 위한 제품이다.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인 에임메드사의 '솜즈(Somzz)'는 2023년 7월부터 3년간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돼 실제 임상 현장에서 임상적 근거를 수집한다.

그런데 디지털치료기기 산업 활성화를 이끌려면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 뿐만 아니라 제품의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한 효율적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규제혁신 100대 과제, 정책 개선 간담회 등을 추진하며 의료기기 규제 개선에 힘쓰고 있다.

식약처도 디지털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2020. 8.), 불면증·니코틴·알코올 개선 디지털치료기기 안전성·성능 평가 및 임상시험 계획서 작성 가이드라인(2021. 12.), 우울장애·공황장애 개선 디지털치료기기 안전성·성능 평가 및 임상시험 계획서 작성 가이드라인(2022. 12.) 등을 발간하며 디지털치료기기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 관계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산업의 안정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인허가 제도, 건강보험 등재 등의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정책 설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미 해외 주요국에서는 자국의 디지털치료기기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으며, 주로 선시장 후평가 스탠스를 지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제품의 '보험 시장 진입'은 핵심적인 단계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일본을 벤치마킹한 케이스로, 재원이 한정된 단일 공보험 체계의 특징을 가진다.

한국의 건강보험 요양급여 비용 구성은 행위, 약제, 치료재료 크게 3가지 범주로 관리되고 있다. 이 중에서 행위는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에 따라 상대가치점수가 매겨진다. 한국은 대부분 행위별 수가로 지불되며 일부 포괄수가제, 일당정액제를 적용한다.

하지만 디지털치료기기는 SaMD라는 특성상 전통적인 건강보험 요양급여 구성과는 다소 맞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지난 7월 26일에 개최된 보건복지부 '2023년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디지털치료기기 수가체계를 의사 행위료와 디지털치료기기 사용료로 구분하는 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의사 행위료는 처방에 따른 관리·효과평가를 보상하는 금액으로 정의되며, 디지털치료기기 사용료는 원가, 신청금액, 외국 사례 등을 수렴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의사 행위료 결정 시 처방에 따른 관리와 효과 평가 범위의 명확한 정의가 요망된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처방 후 환자 자율성에 의해 사용되는 의료기기이기에 임상의의 개입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최초 처방 시에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한 초기 환자교육 및 상담 등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며, 이는 의료기관에서 별도로 발생하는 진료비용으로 추가적인 보상이 따라와야 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환자의 디지털치료기기 사용에 따른 원자료(raw data) 검토 등의 행위도 의사 행위료 결정 시 고민돼야 한다.

연구팀은 "디지털치료기기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의료기술이기에 제도 정착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더불어 다른 의료기술에 비해 선행연구 자료가 현저히 적다는 한계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의 모범 사례를 참고해 한국 건강보험 특성에 적합한 보험 등재 방안을 설계한다면 전 세계 디지털치료기기 시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급여 표준화 모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밖에 디지털치료기기 산업의 생태계 조성은 의료진과 환자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치료기기의 인식 제고가 수반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심평원은 지난 5월 '디지털 헬스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용역'을 공고했다. 해당 사업을 통해 심평원은 디지털치료기기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이용 의향을 조사해 건강보험 급여정책 수립 시 근거 자료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관련 선행연구에 의하면 디지털 헬스 중재를 활용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 잠재적 사용 대상자들은 약 1만3000원의 가격 지불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민들이 디지털 헬스 서비스에 많은 지출을 기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사람들의 인식과 수용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러므로 디지털치료기기 산업 활성화에는 교육과 홍보 등의 방법을 활용한 디지털치료기기 인식 제고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연구팀은 "2023년 국내 디지털치료기기가 첫 출시된 만큼 정비해 나가야 할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디지털치료기기 건강보험 등재 가이드라인' 제정을 시작으로 디지털치료기기 특성에 맞는 건강보험 설계 등의 제도 개선을 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한국이 디지털치료기기 산업의 선도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