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으로 치료받는 세상... 디지털 치료제 등장

지난 2 15일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라는 생소한 분류의 제품이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았다. 에임메드사()에서 개발한 불면증 증상 개선 애플리케이션()솜즈(Somzz)’가 주인공인데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규제 개혁 추진 의사를 밝혔고, 2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에는 아직 용어조차도 생소하지만 디지털 치료제가 범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신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소프트웨어로 질병 치료와 관리

일반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거나 관리하는 방법을 물으면 대부분은 의약품 복용이나 의사가 시행하는 시술 혹은 수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질병 치료나 관리는 기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의료기기다. 디지털 치료제가 기존 의료기기와 다른 점은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물리치료를 받을 때 사용하는 적외선램프나 저주파 마사지기 같은 기기는 별도의 전용 하드웨어가 필요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휴대폰에 설치하는 앱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다른 IT 사업처럼 단순히 앱만 개발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디지털 치료제들은 의약품이나 전통적인 의료기기와 동일하게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그 효과를 확인하고 식약처 같은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아야만 공인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물리적 실체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반 의료기기이다 보니 일반 의료기기 임상시험과 진행 방식이 달라 개발이 까다로운 편이다. 상황이 이러니 해외에서도 아예 디지털 치료제 임상시험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시험 위탁 수행사(CRO)가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으며 국내에도 에버트라이 같은 업체가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규제를 두고 있는데도 다양한 회사들이 디지털 치료제에 도전하는 이유는 디지털 치료제 분야가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사용 빈도가 폭증한 비대면 진료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의료의 영역에 속하는 진단과 처방에서도 디지털화된 형태로 원격지에서 서비스를 받으려는 수요가 많았다. 이보다 더 가벼운 질병이나 모니터링 같은 영역에서 잠재 수요가 큰 것은 당연하다. 디지털 기기가 친숙한 젊은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올라설 때는 시장 규모가 대폭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에선 2017년 처음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 기업들은 여기에 비교하면 최소 6년 정도 느린 셈이다. 국내에서 처음 허가받은 제품인 솜즈는 불면증 치료를 위한 제품인데 미국에서는 이런 정신질환에 관련된 디지털 치료제는 물론이고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관리, 통증 완화를 위한 물리치료, 심지어는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까지 허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후발 주자인 한국으로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돌파구가 필요한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이 돌파구를 데이터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소위디지털헬스케어법은 국회 보건복지위 강기윤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인데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이용성을 높이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의 의료데이터는 실질적으로 전 국민 의료데이터를 건강보험공단이 다 가졌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다. 장기간의 의료 이용 기록과 질병 이력이 나와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빅데이터이다 보니 이를 활용해 디지털 치료제는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논리다.

문제는 개인의 의료 기록이 굉장히 민감하고 내밀한 개인정보라는 점이다. 의료데이터에 대한 비식별 처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데이터 유출이나 개인을 특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두고 의약계 시민단체들은 반대 의사를 피력하는 중이다.

건강보험공단도 원칙에 따라 연구목적으로만 제공한다는 식으로 간접적인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산업적인 필요성은 명확하지만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걸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당장의 데이터 이용보다도 중요한 부분이 있다. 디지털 치료제의 존속이 가능하려면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제도개선보다수익모델이 관건

국내 대표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인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는디지털 헬스케어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의료보험 적용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외에도 독일 등 다양한 국가들이 디지털 치료제에 의료보험을 적용 중인데 이들 국가들이 보험을 적용하는 이유는 개인들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디지털 치료제를 사용할 유인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특성상 직접적인 치료보단 예방이나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품이 많은데 개인 차원에서 질병 예방에 그 정도 비용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인 의료비 절감을 원하는 의료보험이 돈을 내야 하는 구조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유사할 것이고 국산 디지털 치료제의 글로벌 판매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자국 내 의료보험에서도 채택되지 않은 디지털 치료제를 해외에서 보험 적용까지 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이런 점을 이해해서인지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하겠다곤 하지만 보험 적용 시의 디지털 치료제 가격 책정을 어느 정도로 할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기왕 산업화를 목표로 한다면 그에 걸맞은 가격이 책정되어야 세계시장에서도 그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내수만을 노린다면 헐값에라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게 나쁘진 않지만 국내에서 책정된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해외에서 요구하는 건 곤란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료의 관점에서만 평가해 낮은 가격을 책정할지, 산업적 필요성을 근거로 높은 가격을 책정할지는 정책 결정권자의 자유다. 하지만 의료산업 육성으로 새 시장을 열겠다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지를 골라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