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신약개발 현황과 과제

201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AI) 신약개발에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여 2020년을 전후해서는 AI 신약개발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Insilico Medicine 2019년 논문을 통해 AI를 이용하여 섬유증 치료제 초기 후보물질을 46일만에 도출했다고 밝혔다. 2021년에는 Exscientia AI 플랫폼을 이용한 강박장애 후보물질이 임상 1상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는 AI를 활용해서 도출된 후보물질 중 임상개발에 진입한 첫 사례였으며, 지금은 그 수가 8개로 증가하였다.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고 허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AI 신약개발의 짧은 역사를 고려하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신약개발 기간 단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AI를 활용하여 도출된 후보물질의 경우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임상 진입까지 3년 반에서 7년가량 소요되었는데, 기존 제약 업계의 평균인 5년 반에 비해 크게 단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AI로 빠르게 초기 후보물질을 탐색하고 설계할 수는 있지만 실험 검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며, AI 기술이 적용된 단계는 신약발굴이라는 긴 여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효능과 안전성의 평가, 제형 및 공정 개발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임상개발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연구개발 워크플로우 효율화

AI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수많은 가능성 중 신약 연구자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AI의 역할이다. 분자설계를 통한 후보물질의 최적화 과정을 예를 들어보자. 신약 연구자는 AI 플랫폼이 디자인하고 우선 순위화 한 화합물들을 실제로 합성하여 실험적으로 효능 개선 여부를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디자인 전략을 수립한다. 이러한 예측-평가-의사결정 과정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효능이 최적화된 후보물질을 최종적으로 도출하게 된다.

화합물의 합성과 효능 평가를 한 번 수행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신약 후보물질 발굴의 가속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AI예측 자체의 신속성보다 오히려 AI 전문가와 신약 연구자 간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신속한 실험검증과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AI 전문가와 신약연구자 간 긴밀한 협력은 예로 든 최적화 단계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규 표적 단백질 발굴, 가상탐색, 독성 예측 등 AI 기술이 어느 단계에서 적용되는 지와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AI 기반 신약 발굴은 주로 AI 기업과 제약사 간 파트너십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약개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AI기업에 의해 진행되기도 한다. AI 전문가와 신약 연구자 간 소통이 지연될 수밖에 없으며, AI 예측-평가-의사결정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게 연계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AI 플랫폼의 적용으로 우수한 물질이 도출된 이후에도 후속 연구개발과 임상시험을 이어가야 하며, 이는 더디고 녹록치 않은 과정이다.

연구시설 접근성의 강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AI신약개발 회사들은 연구시설 확보에 적극적이다. CRO(임상시험수탁기관)와 같이 연구시설을 갖춘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하며, 회사 내 연구시설을 직접 구축하기도 한다. AI와 신약연구 부서를 한 지붕 아래 둠으로써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이다. 제약사와의 협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력으로 AI 플랫폼의 성능을 평가하여 기술 가치를 입증하고, 개념 증명을 통한 기업 가치제고와 치료제 개발에 더 큰 기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주 목표인 것으로 해석된다.

BenevolentAI는 케임브리지 소재 신약연구시설을, Insitro는 신약연구 스타트업 Haystack Sciences를 각각 인수하여 신약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보한 바 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신테카바이오는 수년전부터 신약연구 부서를 설립하고 국내외 CRO들과의 네트워크 확보를 통해 신속한 실험검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탠다임과 디어젠은 화합물 합성 연구소를 개소한 바 있으며, 온코크로스도 효능 평가 연구소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물론 AI 전문가와 신약 전문가들이 반드시 한 기관 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AI 전문가와 연구자 간 효율적인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AI 신약개발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보틱스를 이용한 자동화 랩을 구축하는 기업도 눈에 띈다. 실험의 자동화로 신약개발을 한 단계 더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다. XtalPi는 최근 화합물 합성 자동화 랩(lab)을 자체 구축하였으며, Insilico Medicine, 신테카바이오 등은 파트너십을 통해 자동화 랩을 보유한 Arctoris와 협력한 바 있다.

전통적인 신약 연구개발과 AI 신약개발 기술은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연구 데이터는 AI 플랫폼이 진일보하는데 자양분이 되며, 이는 또 다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혁신과 효율화를 앞당길 것이다. AI 기업과 기존 제약 업계는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다. AI와 신약연구전문가 간 유기적인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지면상 합성신약 후보물질 발굴의 관점에서 주로 기술하였으나 치료제 연구개발에 있어 AI의 적용범위는 이보다 넓다. 합성신약 외에도 항체 치료제 개발이나 백신 표적 발굴을 위한 AI 플랫폼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규 표적 단백질의 발굴, 후보물질 도출, 제형설계 및 공정설계, 임상시험 참여 환자선별 등 신약개발의 다양한 단계에서 AI기술의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 AI 플랫폼의 복합적인 활용은 AI-신약 연구의 긴밀한 협력과 함께 앞으로 신약개발의 효율성을 더욱더 가속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