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하고 적법한 보호 장치 마련 필수적
|병원과 환자 수용성 높이려면 건강보험 편입이 최적‥보완적 제도로 민간 보험 적용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가 출발선을 넘어 달리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첫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를 받았고, 관련 건강보험 등재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는 등 새로운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애플리케이션(App)이나 게임, 또는 가상현실(VR)과 같은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해 질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치료 방법이다.
이 디지털 치료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 국내에서 '진입 장벽'이 얼마나 낮아지느냐에 따라 디지털 치료제의 운명은 둘 중 하나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새로운 의료서비스 혁명 : 디지털치료제'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 치료제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로 분류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제는 전통적 약물 치료와 달리 신체적 치료보다는 심리적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지행동 치료에 기반을 두고 건강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신개념 치료 방법인 것이다.
법적으로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의 치료와 증상 완화, 처치 및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이므로 제품 분류상 의료기기에 속한다.
2023년 2월 식약처는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로 에임메드가 개발한 '솜즈(Somzz)'를 처음 허가했다.
이는 국내 디지털치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였으나 동시에 다양한 문제가 대두됐다.
첫 번째 장벽은 환자의 건강 데이터와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과정에서의 '보안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치료제 회사들은 보안 전문가와 협력해 정보보호 및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고, 적절한 보안 인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 디지털 치료제의 보안 문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블록체인, 암호화, 다중인증 등 기술적, 법적 대책은 더 강화돼야 한다.
또 다른 법률적인 장벽으로는 디지털 치료제의 '보험 수가'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도 디지털 치료제가 처음 시판돼 다수의 제품이 개발되고 있으나, 공적 보험에 의한 보험급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디지털 치료제의 개념과 건강보험 적용 시 고려할 특성과 요양급여 등재 절차에 따른 방안 및 보상체계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보험 급여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의료기기로 인정된다면 건강보험 급여가 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다. 만약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환자가 많은 비용을 개인적으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사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21년 11월, 복지부는 디지털 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디지털 치료제 급여기준 및 급여목록 업데이트'를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치료제 중 뇌졸중 후 운동 장애 치료, 손상성 척수손상 재활치료, 섬광 감도증 치료 등 일부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장점은 이미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대표적 장점으로는 병원 방문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진료 공간과 시간적 제약을 넘어 비대면으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 지역 거주자나 고령자, 또는 근무로 인해 시간에 제약이 있는 경우 및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가 약을 복용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며, 환자가 약을 어떻게 복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향후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디지털 치료제는 알림 시스템 및 약물 복용량 모니터링 및 행동 변화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환자가 처방전을 이행하도록 돕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치료 비용을 절감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의 약물치료 시스템에 비해 개발 및 복제 비용이 저렴하고 서비스 제공 단가가 낮아 경제성이 뛰어나다.
기존 신약 개발의 경우 평균 3조 원의 비용과 15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평균 100억 원 이하의 비용이 소요되고 개발 기간도 3~5년 정도로 훨씬 짧다.
그리고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적으로 검증된 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delines, CPG)과 임상경로(clinical pathway, CP)를 바탕으로 설계돼 기존 신약보다 효과와 안전성이 훨씬 높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보건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개발 및 확산 초기에 남아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과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한 피어테라퓨틱스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피어테라퓨틱스는 매출에 비해 연구 개발에 비용 지출이 너무 많은 문제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피어테라퓨틱스의 파산 신청은 디지털 치료제 시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치료제가 여전히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피어테라퓨틱스의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에서만 판매 됐는데, 2021년 말 기준으로 이 회사의 디지털 치료제 처방 건수는 1만 4천 건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불안 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수가 4천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복잡한 보험 제도도 한몫했다.
미국의 보험 제도는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받으려면 먼저 해당 치료제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가 건강보험에 등재돼 있지 않으면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더라도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피어테라퓨틱스의 디지털 치료제는 FDA 허가를 받은 지 5년이 넘었지만 미국 내 일부 보험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환자의 사용방법 미준수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피어테라퓨틱스의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받은 환자 중 제대로 사용한 환자는 50% 수준이었다. 이는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사용 방법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치료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험체계가 사보험 위주로 운영되는 미국과 달리 건강보험이라는 공공보험이 중심이므로, 상대적으로 미국보다는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환자와 가족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염려없이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디지털 치료를 고려하는 환자는 정확한 정보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치료제의 장점과 부작용, 현재의 건강 상태를 고려한 적절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개인의 요구와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치료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기 및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기업과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는 병원, 디지털 치료제를 사용하는 당사자인 환자들의 입장도 다르다.
기업 입장에서의 진입 장벽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에 존재하는 허가 불확실성과 개인정보 및 병원데이터 연계의 어려움, 건강보험 수가 반영 불확실성을 꼽을 수 있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디지털 치료제를 부담없이 처방받을 수 있도록 환자의 수용성이 높아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디지털 치료제가 환자에게 비용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져야 한다는 뜻이다.
큰 비용 부담 없이 디지털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환자도 비슷한 입장이다.
연구팀은 "비용 부담을 줄이는 최적의 방법은 건강보험에 편입시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제도를 정비하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만일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의 적용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학적 유효성이 있다면 민간 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보완적 제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