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김민영(가명)씨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유사한 독일의 공적보험 아오카(AOK)의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인 ‘보너스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스마트폰 앱에서 보너스 포인트를 모으면 스포츠·레저 기관에서 건강 상태를 측정,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 활동을 추천해 준다. 운동보조 용품, 혈압 측정기, 발 마사지기 등도 싸게 살 수 있다. 그는 해당 플랫폼으로 근처 피트니스 클럽을 방문, 결제 금액 일부를 환급받기도 했다.
개인 건강관리부터 원격의료까지…선진국에선 일상
김씨 사례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은 이미 해외에서는 주요 보험사의 일상적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이들 글로벌 보험사는 각국의 환경을 반영,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디지털로 제공한다.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주요 성장 산업 중 하나다. 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그룹(UHG)은 헬스케어 자회사 ‘옵튬(OPTUM)’을 설립,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를 분석해 민간 기업과 공공기관·정부·의료기관 등에 컨설팅 서비스로 제공한다. 또 데이터로 고객에게 맞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병의원간 간병인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처방약의 복용 관련 정보를 조회할 수 있으며 의약품이 제대로 배송되고 있는지 등도 알 수 있다.
옵튬은 플랫폼 ‘랠리(Rally)’를 통해 자사 고객뿐 아니라 타 보험사와 기업에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실적도 좋다. 옵튬 매출은 지난 2011년 290억달러(약 39조원)에서 2018년 1010억달러(약 137조원)로 3배 넘게 뛰었다.
미국 보험사 애트나(Aetna) 역시 스마트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름 나 있다. 특히 다양한 협력사와의 제휴를 통해 서비스 퀄리티를 높였다. 애플(APPLE)과 협업해 고객이 애플워치에서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서비스다.
고령화가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인 일본에선 요양과 헬스케어를 접목한 서비스가 뜬다. 대형 손보사인 솜포홀딩스는 시설요양과 재택간병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간병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로봇이 거주인의 외출여부를 파악하고 사물인터넷(IoT)센서가 부착된 매트리스로 입주자의 수면패턴과 심장박동 등을 모니터링한다.
아시아 권에서는 일본 못지 않게 중국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활발히 활용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수요에 비해 의료서비스가 부족하다보니 보험사가 폭 넓은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국 대형 보험사 평안보험은 의료정보 기업 ‘평안굿닥터'를 설립, 핵심사업으로 문진실과 의약품 자판기로 구성된 ‘1분 무인진료'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오프라인에서 선보이고 있다.
평안보험은 이 밖에도 ▲원격의료 서비스 ▲헬스케어 이커머스(비처방약, 건강식품, 스포츠식품 판매) ▲건강검진 ▲소비형 헬스케어(질병위험 분석과 사후 모니터링) ▲헬스케어 매니지먼트와 웰니스 인터랙션 사업(기업고객 대상 맞춤형 광고와 서비스) 등을 운영한다.
보험문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유럽에서는 고령화와 맞물려 보험업권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의 핵심은 데이터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유럽인 3억명 의료 데이터의 표준화 작업을 목표로 2018년부터 하고 있는 ‘에덴(EHDEN)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공통 데이터 모델이 구축되면 질병의 예방과 치료법 개발 등 의료 전반에 큰 진전이 예상된다.
EU 공통의 프로젝트가 수행되기 한참 전인 2007년, 핀란드는 이미 ‘e-헬스로드맵’이라는 정책을 추진했다. 사회복지와 진료기록, 유전체 데이터 등 헬스 데이터를 중앙화하는 ‘칸타 시스템'을 구축했다. 핀란드 정부는 칸타 시스템의 통합 데이터를 익명처리해 외부 기업에 개방했다. 보험사도 관련 통계를 활용할 수 있는 물론이다. 칸타 시스템에 저장된 시민들의 건강 기록으로 보험사는 양질의 디지털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 있다.
다른 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 AXA 그룹의 AXA 헬스는 건강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 고객이 건강관리 리워드 포인트를 활용해 건강 몰에서 질환관리 용품이나 건강 식품, 디지털 건강기기 등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독일 알리안츠(Allianz) 그룹의 알리안츠 파트너스는 ‘디지털 헬스 어시스턴트’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지원한다. 고객은 자신이 사용하는 텔레그램, 왓츠앱 등 모바일 앱에서 AI챗봇에게 증상을 말하면 전문의 의료조언을 받을 수 있다. 의사는 건강 상담부터 치료 및 처방전을 제공한다. 약은 고객 문 앞으로 배달된다.
시장규모 2025년 859조 예상…데이터 적극 활용 관건
주로 앱을 통해 제공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는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종합의료서비스’로 통용된다. 삼일PwC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치료뿐 아니라 미래 예측을 통한 질병예방 등 고객 개개인에 적합한 맞춤의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바탕에는 IoT, 인공지능(AI), 3D 프린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기술이 있다.
연미영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서비스 박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가속화되자 의료의 접근성 문제, 생활양식 변화로 인한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수요 창출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파악했다.
실제로 글로벌 리서치 전문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9년 1750억달러(약 229조원)에서 2020년 2160억달러(약 282조원)로 23.4% 늘어난데 이어 2021년에는 2680억달러(약 350조원)를 기록, 또 다시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다. 2025년에는지금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6570억달러(약 859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사례처럼 각 보험사가 독자적으로 데이터 활용할 수 있다면 소비자 후생 증진에 따른 편익 도모는 물론, 새로운 시장 창출에 따른 산업 발전,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버팀목이 될거란 예상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헬스케어 서비스가 활성화하면 국민 의료비 절감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육성 등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홍석철 서울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스마트 헬스케어 발달에 따른 고용유발계수(10억원의 재화를 산출할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는 16.7명으로 국내 전체 산업군 고용유발계수인 8.7명의 두배 수준이다.
다만 국내 보험사의 경우 아직까지 관련 상품 출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보험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헬스케어 산업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다 보니 다양한 반발이 있고, 특히 의료 데이터를 쉽게 활용하지 못해 해외 통계를 활용해 여러 상품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활용할 데이터의 총량이 충분한데 비효율적일뿐만 아니라, 국내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도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선적으로 해외처럼 데이터 활용을 자유롭게 하고 각 보험사별 차별화된 서비스를 마련하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